전도관 출신 박윤식 전도사가 ‘동명이인’인 분명한 근거들
그동안 평강제일교회 박윤식 원로목사를 ‘전도관 통일교 출신’으로 비판했던 주장과 근거들이 사실은 ‘동명이인’의 전도관 출신의 박윤식 전도사에 관한 이력이었음이 밝혀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수용하지 않고 부당한 의혹을 지속적으로 제기하는 주장들이 있어 다음과 같이 해명합니다.
(1) ‘두 명의 박윤식’은 전혀 다른 길을 걸어온 동명이인입니다.
아래 표에서 알 수 있듯이 박윤식 목사의 동마산 감리교회 서리 담임자 시절에 ‘전도관 출신 박윤식 전도사’는 이미 목포 전도관에서 통일교로 입교하여 원리공부를 하고 통일교의 ‘목포교회’를 1962년 정도까지 담당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사보> 109호, 166호).
‘두 명의 박윤식’은 각각 전도관-통일교 활동과 감리교-장로교단에서 목회를 한 것이 이력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만약 ‘박윤식 목사’가 [전도관-통일교 출신]이라면 그의 행적은 [목포 전도관 - 서울 통일교 – 마산 감리교]로 납득하기 어려운 삶을 살아간 것이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행적은 두 가지 측면에서 불가능합니다.
첫째는, 통일교 교리에 심취한 ‘전도관의 박윤식 전도사’가 다시 감리교단의 전도사가 되어 교회를 담임한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통일교 <사보> 166호의 유효원의 기록에 의하면 당시 ‘전도관 출신 박윤식 전도사’는 통일교 원리공부에 크게 은혜를 받고 심취하여 전도관의 전도사들을 통일교로 이끌어 들이는 등 열성적으로 활동하였습니다.
“강의의 상대는 박윤식씨다. 매우 기뻐하다.”(1957.11.8.금)
“정대생(政大生) 10여 명을 상대로 박윤식 전도사가 입교 간증담을 하다.”(11.24.일)
“박윤식 전도사는 수원 전도관 전도사를 데리고 온다고 수원으로 갔다.”(11.25.월)
“전도사 박윤식씨를 상대로 말씀하다. 좋아서 어쩔 줄 몰랐다.”(11.26.화)
“박윤식씨가 전도관 총무를 데려온다 하여 기다리다가 11시에 강의를 시작하다.”(1958.1.6.월)
“박윤식씨가 전도관 전도사 한 분을 데려왔다. ... 그는 3시간의 강의에 감명되고 말았다.”(1.7.화)
“오늘은 전도관에서 박전도사를 찾아온 분을 상대로 원리 말씀하다.”(1.30.목)
“전도관에서 온 유원배씨도 다른 전도사를 데리고 와서 설교를 듣고 울고 갔다. 이제는 전도관도 움직이기 시작한다.”(2.2.일)
“저녁 설교는 박윤식씨가 하다.”(2.16.일)
이상의 통일교 기록을 볼 때, 당시 ‘전도관 출신의 박윤식 전도사’는 통일교에 심취하여 전도관의 전도사들을 통일교로 인도했을 뿐 아니라 이듬해에는 ‘설교’를 담당할 정도의 위치까지 올라 있었습니다.
그리고 통일교 <사보> 109호(1990,12월) 내용은 “유서 깊은 옛 모습 79”라는 제목으로 ‘목포교회’를 다루고 있는데, ‘두 명의 박윤식’이 동명이인임을 입증하는데 결정적인 근거가 됩니다. 가장 명백한 것은 사진상의 얼굴이 다르기 때문이고, 다른 또 하나의 이유는 ‘전도관 출신 박윤식 전도사’가 1957년 목포 전도관을 이탈하여 통일교에 입교한 이후 <사보> 109호를 발간한 1990년 12월까지 통일교에서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보> 109호는 ‘전도관 출신의 박윤식 전도사’를 중심으로 목포교회의 생성과정과 30여 년의 역사를 정리하면서, 사진 상의 인물들과 기타 주요 사람들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만약 여기에 등장하는 ‘박윤식 전도사’가 평강제일교회 박윤식 목사라면 이듬해에 다시 통일교를 이탈하여 감리교로 옮긴 후 전도사가 되고, 동마산 감리교회를 담임했다는 말이 됩니다. 그런 일이 있었다면 목포교회의 핵심인물인 ‘박윤식 전도사’의 행적을 빠트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보> 109호의 내용을 볼 때, ‘전도관 출신의 박윤식 전도사’는 감리교로 다시 이탈하여 나갔다는 기록도 없고, 적어도 사진을 촬영한 1962년 당시까지는 통일교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이 확실합니다. 따라서 이미 1959년 12월(감리교 공식 기록)에 감리교단 소속 전도사로서 동마산 감리교회를 담임하였던 평강제일교회의 박윤식 목사와는 명백하게 전혀 다른 동명이인임을 알 수 있습니다.
둘째, 감리교의 교역자 임명과 파송의 과정을 볼 때, ‘통일교 출신’의 전도사를 갑작스럽게 임명한다는 것 또한 불가능합니다.
교단에서 교역자로 임명을 하고, 그에게 교회를 담임시키려면 적어도 그 교단에 소속되어 신학을 하고 교회를 섬기며 봉사하는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에게 신앙과 목회적 능력이 인정될 때 교회를 담임케 하는 것이 정상적인 교단의 모습이고 목회자 양성 절차입니다. 박윤식 목사는 감리교의 공식 기록에 의하면 1959년 12월부터 61년 7월까지 ‘동마산교회’를 전도사 신분으로 담임하였습니다. 김관도 목사는 당시 ‘박윤식 전도사’가 1958년 4월부터 동마산 교회에서 봉사한 것으로 진술하고 있습니다. 이는 감리교 공식기록과는 차이가 나지만, 적어도 당시 ‘박윤식 전도사’(평강제일 교회 원로목사)가 마산 지역에서 감리교단 소속 교역자로서 봉사했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는 중요한 자료가 됩니다. 이러한 사실은 탁 모 씨나 정정조 목사의 기록에서도 박윤식 목사가 1957년부터 동마산 감리교회를 담임했다고 기록한 데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만약 세이연의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감리교단은 통일교에 심취하고, 설교까지 하던 사람을 소속 교단의 전도사로 임명하고, 교회를 담임시키기까지 했다는 말인데, 이는 교단의 생리와 목회자가 되는 과정을 살펴볼 때 절대 불가능합니다. <사보> 166호의 유효원의 기록에서 ‘전도관 박윤식 전도사’가 통일교 원리공부에 심취해 있을 그 때에 ‘박윤식 목사’는 마산 지역에서 감리교단 소속으로 신앙생활을 하며 전도사가 되고, 동마산 감리교회를 담임하여 목회를 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몇 가지 자료만 검토해 봐도 당시 ‘두 명의 박윤식’이 존재했고, 이 둘은 전혀 다른 길을 걸었던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2) 두 사람은 부인이 다른 동명이인입니다.
통일교의 <사보> 166호에 의하면 당시 ‘박윤식 전도사’는 12월 11일(수)에 정정애 양과 결혼식을 하였다고 나옵니다. “그들은 오늘이 결혼식 날이다. 뜻을 위해 연장시킨 일”이라는 내용을 볼 때, 원래 결혼식은 그 이전이었는데 뜻을 위해 연장시켜서 이 날(12월 11일) 결혼을 했다는 것입니다. 12월 12일(목)과 13일(금)에도 “박 전도사와 그의 신부였던 정정애양을 상대로 말씀하다”라는 기록이 나옵니다.
이 기록은 당시 두 명의 ‘박윤식’이라는 사람이 존재했다는 명백한 증거가 됩니다. 만약 세이연의 주장대로 통일교 ‘사보’에 나오는 ‘박윤식 전도사’가 평강제일교회 박윤식 원로목사라면 그의 부인인 ‘정정애’가 현재 박윤식 목사님의 사모님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박윤식 원로목사의 부인은 정정애가 아니라 민00 이기 때문에, 이 둘은 결코 동일인일 수가 없습니다.
(3) 전도관 출신 박윤식 전도사의 사진은 박윤식 원로목사와 전혀 다른 인물입니다.
‘교회와 신앙’ 2013년 8월 9일자 ‘이영호 목사’의 글을 보면 통일교의 <사보>를 인용하여 “① 1957년 목포 전도관 분열파동으로 1958년에는 박윤식 전도사가 책임 인도하며, 이승규 전창배가 목포 통일교회에 입교”라고 기술하였습니다. 통일교 <사보> 166호의 유효원의 일기에 나오는 ‘전도관 출신 박윤식 전도사’의 존재와 행적, 그리고 109호에 나오는 ‘박윤식 전도사’의 목포 전도관 이탈과 당시의 사진은 그동안 박윤식 원로목사의 통일교 전력을 주장하는 핵심적인 근거자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자료는 모두 ‘전도관 출신 박윤식 전도사’에 관한 내용들로서, 박윤식 목사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것들입니다.
특히 <사보> 109호(1990년 12월)는 ‘전도관 출신의 박윤식 전도사’의 사진까지 선명하게 게재되어 있고, 설명 내용에도 “사진엔 박 전도사가 검은 복장을 하고 중앙에 앉아있고”라고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얼굴비교를 통해 명백하게 다른 인물임이 밝혀졌던 것입니다.
그런데 ‘세이연’은 지난 11월 20일자로 발표한 기자회견문에서 사진상의 인물을 ‘전도관 출신의 박윤식 전도사’가 아니라 ‘박종우’씨의 것이라 주장하고 있으나 이는 전혀 사실과 다릅니다. 그 이유는 사진상의 인물에 대해 분명히 ‘박 전도사’라고 지칭하고 있고, 위 기사에서 ‘박 전도사’에 해당하는 인물은 바로 앞에 언급된 “1958년 목포의 전도관 분열파동으로 박윤식 전도사가 갈라져 나와서 목포교회를 책임인도 하였으며...”라는 문장의 ‘박윤식 전도사’이기 때문입니다. 세이연에서 주장하는 ‘박종우 전도사’는 기사에서 ‘박종우 씨’로 한번 언급된 인물이며, 그는 ‘전도사’가 아니기 때문에 사진상의 ‘박 전도사’가 될 수 없습니다.
또한 <사보> 109호의 내용 전체를 읽어보면 저자는 모든 사람들의 이름에 ‘직함’을 붙여쓰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목사’, ‘전도사’, ‘씨’, ‘양’, ‘할머니’, ‘선생’ 등을 반드시 이름 뒤에 붙여 씀으로써 혼동을 피할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역할과 직책을 확실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따라서 ‘박종우 씨’를 임의로 ‘박종우 전도사’로 만들 수 없습니다. <사보> 166호의 유효원의 일기에서도 ‘박윤식 전도사’를 ‘박 전도사’로 바꿔가며 기록하고 있음을 볼 때, 어떤 경우에도 ‘박종우 씨’가 ‘박 전도사’로 바뀔 수 없습니다. <사보> 109호에 나오는 ‘박 전도사’를 ‘박종우 씨’로 해석하는 것은 전도관 출신의 박윤식 전도사와 평강제일교회 박윤식 목사가 전혀 다른 동명이인으로 밝혀진 것을 인정하지 않고 책임을 모면하기 위한 술책에 불과한 것입니다.
(4) 두 명의 ‘박윤식’은 서로 한자 이름이 다릅니다.
월간 통일세계(1981.11월호)의 기록(‘오래된 교회를 찾아본다’)을 살펴보면 2002년에 발행된 통일교의 <사보> 166호의 내용과 일맥상통합니다. 즉, 1957년 11월부터 전도관 교인들이 집단으로 통일교회로 개종하고 이적해 왔고, 그 개종한 사람들이 전도관 박윤식이라고 기재되어 있으나, 그 한자 이름이 박윤식 목사의 한자 이름인 ‘朴潤植’이 아니라 ‘朴允植’이라고 다르게 표기되어 있습니다. 이 두 기사를 연결시켜보면, 적어도 ‘목포 전도관에서 이탈하여 통일교로 넘어온 박윤식 전도사’는 ‘朴允植’이라는 한자 이름을 사용한 자로, 평강제일교회 박윤식 목사와는 전혀 다른 동명이인이었던 것입니다.
이상, 네 가지 근거에 의해 1950년대 후반 ‘박윤식’이라는 이름을 가진 두 명의 동명이인이 존재했다는 사실과, 그동안 세이연측에서 ‘박윤식 목사의 전도관, 통일교 전력’의 근거로 제시한 ‘전도관 출신의 박윤식 전도사’는 박윤식 원로목사와는 전혀 다른 사람임이 명백하게 밝혀졌습니다.
<주류> 잡지의 설교문 게재에 관하여
세이연은 금번 기자회견문(11월 20일자)에서뿐 아니라, 지난 2012년 5월 29일에도 “통일교 잡지에 글을 쓴 박윤식씨”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서, 그리고 2013년 8월 9일자 교회와 신앙에서 이영호 목사에 의해 지속적으로 통일교 <주류(主流)>에 설교문을 게재한 것을 박윤식 목사가 통일교와 교류한 증거로 주장하여 왔습니다.
그러나 이는 엄연히 사실과 다른 허위 주장일 뿐입니다.
1) 통일교의 <주류(主流)>에는 곽선희, 김선도, 강원용 목사 등 당시 한국 교계를 대표하는 목사들의 설교가 매월 ‘이달의 말씀’이라는 제목으로 게재되었습니다.
①1984년 12월 호에는 소망교회 곽선희 목사의 ‘감사 찬송의 주제’라는 제목의 설교문을 ‘이달의 말씀’란에 게재되었습니다(6-8쪽). 같은 책 56쪽에는 감신대 학장 변선환 목사의 ‘한국 기독교의 근대화 방향’이라는 기고문도 게재되었습니다.
②1985년 1-2월호(제10호)에는 광림교회 김선도 목사의 ‘사랑의 날개를 타고’라는 제목의 설교문이 역시 ‘이달의 말씀’란에 게재되었습니다.
③1985년 4월호(제12호)에는 경동교회 강원용 목사의 ‘고난의 현장으로’라는 제목의 설교문이 게재되었습니다.
세이연의 주장대로라면 곽선희 목사나 김선도 목사도 통일교와 교류를 하였으며, 이들도 통일교 출신이란 말이 됩니다. 당시 <주류>는 ‘기독학생연합회’(ICSA)라는 이름으로 발간된 기독교 계통의 월간지를 표방하였습니다. 이는 3월호 목차를 볼 때 ‘교회탐방’, ‘산상수훈’, ‘공동체로서의 한국교회’, ‘예수가 만난 사람들’, ‘주 예수보다 귀한 분은 없네’ 등 기독교적인 내용들로 구성된 것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한 1985년 3월호는 제 11호로서, 발간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통일교 계통의 잡지라는 것이 알려지지 않았던 때입니다. 때문에 박윤식 목사가 <주류>에 설교문을 게재한 것은 그것이 통일교 계통의 잡지인줄 몰랐기 때문이고, 그 전 호에 곽선희 목사나 김선도 목사의 설교가 게재된 것을 보고 선교차원에서 청탁에 응한 것 뿐입니다.
2) 박윤식 목사가 <주류>에 게재한 설교문은 <1983년 2월 10일 주일 낮 설교>를 요약한 것입니다. 그 내용을 보면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의 조건을 여섯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①부르심에 아멘하는 사람 ②열심히 일하는 사람 ③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④주님을 사랑하는 사람 ⑤충성하는 사람 ⑥복음을 위해서 일생을 바친 사람. 이상의 설교문을 보면 지극히 정통적이고 성경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설교의 전체적인 내용이나, 전후 맥락을 살펴보지 않고 단지 통일교에서 발간하는 잡지에 설교를 게재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통일교 출신이니, 통일교와 교류하고 있다는 증거라는 등의 비판은 전혀 사실과 다른 주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