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식 목사는 처음부터 이단이 아니었다.
“전도관과 통일교의 박윤식 전도사와 전혀 다른 인물로 밝혀져”
-정정보도 고등법원 재판에서 승소-
평강제일교회와 박윤식 목사는 2014나 12630 정정보도 재판(서울고등법원 제 13민사부, 재판장 고의영) 제 2심에서 주식회사 한국교회문화사(교회와 신앙, 최삼경이사)와 정윤석(기독교포털뉴스)에게 완전 승소하였다. 재판부는 전도관에 있다가 통일교에 입교한 박윤식 전도사와 평강제일교회 박윤식 원로목사는 동일인이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그러므로 박윤식 목사는 처음부터 이단이 아니었고, 이단연구가들이 박윤식 목사를 전도관과 통일교 출신의 이단이라고 조작하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 전도관 · 통일교
출신이라는 음해 - 전 감리교 마산지역 담임
김관도목사 증언 - 동마산교회
전도사 이후의 사역 - 이단 조작자의
사과와 정정보도 - 동명이인으로 인한
명예훼손 판결 - 구속사시리즈에
대한 공격 - 사진조작과
허위사실 유포
신흥 이단감별사들의
전도관, 통일관출신이란 거짓주장들
2013년 7월 26일 기독신문에 박윤식 목사를 왜곡한 진용식 씨 관련 기사를 보면 <박윤식 씨(평강제일교회)가 과거 통일교 출신이며 통일교와 전도관의 교리를 혼합한 가르침을 펼쳐온 것으로 알려져 정통교회로의 복귀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됐다. 한국기독교이단상담소(회장 진용식 목사)는 7월 26일 해오름교회에서 '평강제일교회 박윤식 목사와의 재판 승소 감사예배'를 통해. '박씨는 과거 총신대 교수들과의 재판에 이어 이번에 진용식 목사와의 재판에서도 패해, 통일교 연관설과 전도관 출신이란 사실이 확정된 이상 교단도 아닌 연합기관을 통한 이단 해제 시도는 포기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진용식 씨 등의 주장에는 1957년 전도관이 발행하는 신문 <국제기독교뉴스>에 전라남도 화순전도관의 박윤식 전도사가 신문사를 방문하고 광복절 축하광고를 게재한 사실이 있다고 하였다. 또 통일교 역사편찬위원회가 발간한 <사보>에는 박윤식 전도사가 통일교로 입교하였다고 기록하였다.
그리고 안식교 이단 출신 진용식은 박윤식 목사가 박태선 전도관 출신이고 전도관과 통일교의 교리를 혼합한 사실을 가르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과 기록은 거짓으로, 2010. 1. 14일 대법원 제2부 2009다86741 출판물 판매, 배포 금지 등 판결문에는 '박윤식이 전도관과 통일교에서 활동하며 혼합된 교리를 가르치며 목회하였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면서
첫째 : 당시의 교통상황으로 전도관과 통일교가 있는 마산에서 목포와 화순, 서울을 오르내릴만한 신분이 아니다.
둘째 : 박윤식 목사는 1958년 4월에서 1962년 3월까지 마산시 회원동 75-1에 있는 대한감리회 남부연회 소속 동마산교회에서 서리담임자(전도사)로 활동하였 기에 그의 전도관 통일교 출입이란 사실이 아니다.
셋째 : 감별사들이 제시하는 문건(국제기독교뉴스)에서 1957년에 화순전도관에 있었고, 통일교 <사보>에는 1957년 목포전도관에서 통일교로 입교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전 감리교 마산지역 담임
김관도 목사 증언
우선 시차적으로 1957년과 58년에 전도관과 통일교에 있었다고 하였는데, 2008. 5. 14일 대한기독교감리회 중앙연회 김관도 목사의 '사실확인서'에는 박윤식 목사는 1958년 4월부터 1962년 3월까지 동마산감리교회에서 서리담임자 (전도사)로 시무하였다고 확인하였다.
기독교대한감리회 연회록에는 1960년 연회, 1961년 연회에 박윤식 목사는 동마산감리교회 서리담임직에 있다가 1961년 11월경 김관도 목사와 함께 마산을 떠났으므로 통일교나 전도관에 있은 적이 없다고 하였다.
2013. 8. 20일 본보기자가 김관도 목사의 감리교원로원을 방문하였을 때 인터뷰이다.(2013. 8. 20일 오전11:30. 감리교원로원 205호 김관도 목사 거실)
▶ 질문: “목사님은 박윤식 목사가 1958년 4월부터 1962년 3월까지 동마산 감리교회에서 서리 담임자(전도사)로 시무하였음을 확인하였는데 맞습니까?”
▷ 답변: “네, 맞습니다.”
▶ 질문: “김관도 목사님은 1956년부터 진해에서 목회를 하신 것으로 연회록에 나오는데 맞습니까”
▷ 답변: “네, 맞습니다.”
▶ 질문: “그러면 박윤식 목사님을 처음 만난 것은 언제입니까?”
▷ 답변: “1957년 말로 기억됩니다.”
▶ 질문: “연회록에는 박윤식 목사가 1960년부터 동마산 감리교회 담임자로 나와있는데, 그것은 정식으로 임명받기 전에 약 2년 동안 무임으로 일하는 것을 보고 임명하는 관례에 따른 것이지요?”
▷ 답변: “네, 맞습니다. 당시는 너무도 생활이 어려워 많은 교회들이 교역자 이름만 올라있고 실제는 없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 질문: “더 하실 말씀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십시오.”
▷ 답변: “박윤식 목사가 감리교 서리담임이 되기 전에 전도관 통일교에 있었다는 것은 거짓말이예요. 감리교는 전도사 시취에 합격하면 서리전도사라고 해요. 2년 후에 준목사고시를 보고 합격하면 준목사(강도사 같은)가 되고 그후 2년 뒤에 목사고시를 보기 때문에 어디 곁눈질할 시간이 없었어요. 특히, 박윤식 목사는 그 어려운 생활 중에도 마산에 있는 동안 손수 벽돌로 동마산감리교회를 지었지요(사진 아래). 곁눈 팔 수 없었어요.”
동마산교회
전도사 이후의 사역
1961년 이후 박윤식 목사의 사역은 통일교가 결코 아니었음을 밝혀준다.
(1) 1990. 5. 30일자 국민일보 11면에 게재된 명지대학교 총장 유상근 장로의 신앙간증문에 의하면, 1960년 내무부 통계국장을 역임하고 명지대학교의 총장으로 취임하는 유상근 장로는 '행정학, 법학, 철학을 닥치는대로 공부하였으나 성경말씀이 없이는 총장직을 감당할 수 없어 성경말씀을 1천독 하셨다는 유명한 박윤식 목사를 찾아갔다. 자초지종을 설명드리고 성경을 배우겠다고 말씀 드렸더니 박 목사님은 바쁜 시간을 쪼개어 하루에 2시간씩 지도해 주시기로 배려하여 2년 동안 꾸준히 성경말씀을 공부하였다.'고 고백하였다. 2년 동안 명지대학교 총장이 박윤식 목사에게 성경공부를 하였고, 또 부산에 성창기업 창업주 정태성 장로도 박윤식 목사에게 성경공부를 하여 박윤식 목사가 서울에서 교회를 개척 설립할 때 목재 등 많은 물자를 지원하여 주었다.
(2) 그 후 새문안교회 강신명 목사와 신앙적으로 깊은 유대를 가지고 서로 교환하면서 부흥회를 인도한 적이 있었다.
이단조작자의 사과와 정정보도
이단감별사는 사실성이 없고 시효가 넘은 통일교 전도관 타령을 한 것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처음 통일교 전도관 타령을 탁모 씨가 시작하였다. 탁 씨 이후에 그 추종자들이 박윤식 목사를 공격하는 전형적인 패턴으로, 박윤식 목사는 통일교 전도관의 혼합교리를 주장한다고 신문광고에 대대적으로 게재하는 것이었다. 이때 박윤식 목사에 대한 기사는 탁 씨 측의 일방적인 주장임이 밝혀지자 1990년 6월 25일 전국교회 앞에 (전 기독교신문 및 미주크리스챤신문 등에) '박윤식 목사님을 싸잡아 이단으로 몰아부친 점에 대하여 사과하며 박윤식 목사님은 합동보수교단에 소속된 건전한 목사님인 것을 밝혀둡니다.'라고 공개하였다.
1994년 3월 동아일보, 한국일보, 중앙일보, 경향신문, 국민일보, 일요신문 등이 직접 사과를 하고 또한 신문의 공식적인 입장으로 <바로잡습니다> <고침> 등으로 정정기사를 게재하였다.
동명이인으로 인한 명예훼손 판결
전도관에 박윤식과 원로목사 박윤식은 한문 명칭이 허락할(믿을) '윤'(允)자 박윤식과 윤택할 '윤'(潤)자 박윤식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다고 판시하고 있다.
특히 2010. 1. 14일자 대법원 제2부 재판장 양승태(현 대법원장) 대법관 판결문에서 당시 상황과 증인들의 증언을 기초로 하여 ①마산에서 화순, 목포에 산재해 있던 두 기구로 오고가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웠고 ②증인 통일교 간부였던 유효원의 증언과 일치하며 ③통일교 박윤식과 평강제일교회 박윤식 원로목사와의 한자 이름이 다르다는 사실을 토대로 박윤식은 통일교 전도관 출신이 아니라고 대법원에서 확정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이는 명백한 사실에 근거한 대법원 판례이다.
전도관에 있다가 통일교로 옮긴 박윤식씨는 전도관에 있을 때는 윤택할 '윤'을 사용하다가 통일교로 옮길 때는 허락할 '윤'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평강제일교회 박윤식 원로목사는 1928년 출생시부터 지금까지 호적에 등재된 윤택할 '윤'을 사용하고 있다.
구속사시리즈에 대한 공격
감별사들은 박윤식 목사가 이단성을 감추기 위해 책을 쓰고 언론에 공개한다고 비판하였다.
첫째 : 박윤식 원로목사는 50여년 설교한 프리노트를 정리하여 은퇴 후에 한국교회에 남기기 위해 <구속사시리즈>를 발간하였다.
둘째 : <구속사시리즈>는 전 12권이며 현재는 9권까지 발간이 되었고, 여기에 국내외 신학자와 석학 30여 명이 서평과 추천을 하고 16개국으로 번역판을 낸 기독교교리를 근간으로 한 하나님의 구속사적 경륜을 수록한 것이다.
셋째 : 특히 추천인 중에는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 총장 피터 A. 릴백 박사와 리폼드 신학대학원 총장 프랭크 A. 제임스 3세 박사, 그리고 미국 낙스대학 총장 루더 위틀락 박사 등의 하나님의 구속사의 경륜에 대한 책에 극찬을 하고 대학교 교재로 사용하며 또한 이 책에 대한 공을 높이 평가하여 명예신학박사 학위까지 수여한(사진 오른쪽) 성경보수의 서적으로, 이 책을 근거로 주일설교를 하고 있는데 감별사들의 주장은 거짓이며 음해성이 있는 발언이다.
사진조작과 허위사실 유포
이들 신흥감별사들이 심지어 50년 전 사진이라고 하면서 그 사진에 박윤식 원로목사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첫째 : 이단감별사의 특기 중에 사진 세탁은 역사적 전례가 있는 행위로 고 탁모 씨가 50년 전 박윤식 목사와 여성도 4인이 기념촬영한 것을 가지고 옆에 있는 여성도들은 잘라내고 한 사람의 여성도만 남겨 "다정한 한 때" 로 표기하였다. 이런 사진에 의한 세탁은 전인격, 신분에 대한 악의적인 세탁이다.
둘째 : 이 건에 대하여 2013년 7월 16일 우리나라에서 사진 영상의 최고 권위자인 명지대학교 정보통신학과 최창석 교수에게 사진감정을 의뢰한 바, 최창석 교수는 '얼굴 전체적으로 닮은 곳이라고는 하나도 없어 동일인물로 의심할 수가 없다. 설령 동일인물이 성형을 했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다르게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판단하였다.
셋째 : 최창석 교수는 12개 부위를 감별하였다
① 얼굴형 : (允)역오각형 vs (潤)타원형
② 얼굴길이 : (允)짧다 vs (潤)길다
③ 두상 : (允)납작한 형 vs (潤)둥근형
④ 두발 : (允)약간 곱슬 vs (潤)직모
⑤ 이마 : (允)좁다 vs (潤)넓다
⑥ 눈썹 : (允)일자 수평 vs (潤)아래로 처진 형
⑦ 눈 : (允)가로로 좁고 둥글다 vs (潤)가늘고 길다
⑧ 코 : (允)가로로 좁고 둥글다 vs (潤)끝이 길고 날씬하다
⑨ 입술 : (允)오른쪽이 처진 형 vs (潤)거의 수평형
⑩턱 : (允)짧고 각지다 vs (潤)길고 V라인
⑪ 턱끝 : (允)짧고 좁다 vs (潤)길고 넓다
⑫ 귀 : (允)위로 누워 있다 vs (潤)앞을 향해 있다
감정자인 최창석 교수는
① 우리나라 검찰에서 사용중인 몽타주 시스템 개발자이며
②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자문위원이고
③ 「얼굴은 답을 알고 있다」의 저자이며
④ 25년간 얼굴 연구를 하여 얼굴 정보처리 전문가이다.
전도관 출신 박윤식 전도사가 ‘동명이인’인 분명한 근거들
그동안 평강제일교회 박윤식 원로목사를 ‘전도관 통일교 출신’으로 비판했던 주장과 근거들이 사실은 ‘동명이인’의 전도관 출신의 박윤식 전도사에 관한 이력이었음이 밝혀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수용하지 않고 부당한 의혹을 지속적으로 제기하는 주장들이 있어 다음과 같이 해명합니다.
(1) ‘두 명의 박윤식’은 전혀 다른 길을 걸어온 동명이인입니다.
아래 표에서 알 수 있듯이 박윤식 목사의 동마산 감리교회 서리 담임자 시절에 ‘전도관 출신 박윤식 전도사’는 이미 목포 전도관에서 통일교로 입교하여 원리공부를 하고 통일교의 ‘목포교회’를 1962년 정도까지 담당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사보> 109호, 166호).
‘두 명의 박윤식’은 각각 전도관-통일교 활동과 감리교-장로교단에서 목회를 한 것이 이력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만약 ‘박윤식 목사’가 [전도관-통일교 출신]이라면 그의 행적은 [목포 전도관 - 서울 통일교 – 마산 감리교]로 납득하기 어려운 삶을 살아간 것이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행적은 두 가지 측면에서 불가능합니다.
첫째는, 통일교 교리에 심취한 ‘전도관의 박윤식 전도사’가 다시 감리교단의 전도사가 되어 교회를 담임한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통일교 <사보> 166호의 유효원의 기록에 의하면 당시 ‘전도관 출신 박윤식 전도사’는 통일교 원리공부에 크게 은혜를 받고 심취하여 전도관의 전도사들을 통일교로 이끌어 들이는 등 열성적으로 활동하였습니다.
“강의의 상대는 박윤식씨다. 매우 기뻐하다.”(1957.11.8.금)
“정대생(政大生) 10여 명을 상대로 박윤식 전도사가 입교 간증담을 하다.”(11.24.일)
“박윤식 전도사는 수원 전도관 전도사를 데리고 온다고 수원으로 갔다.”(11.25.일)
“전도사 박윤식씨를 상대로 말씀하다. 좋아서 어쩔 줄 몰랐다.”(11.26.화)
“박윤식씨가 전도관 총무를 데려온다 하여 기다리다가 11시에 강의를 시작하다.”(1958.11.6.월)
“박윤식씨가 전도관 전도사 한 분을 데려왔다. ... 그는 3시간의 강의에 감명되고 말았다.”(1.7.화)
“오늘은 전도관에서 박전도사를 찾아온 분을 상대로 원리 말씀하다.”(1.30.목)
“전도관에서 온 유원배씨도 다른 전도사를 데리고 와서 설교를 듣고 울고 갔다. 이제는 전도관도 움직이기 시작한다.”(2.2.일)
“저녁 설교는 박윤식씨가 하다.”(2.16.일)
이상의 통일교 기록을 볼 때, 당시 ‘전도관 출신의 박윤식 전도사’는 통일교에 심취하여 전도관의 전도사들을 통일교로 인도했을 뿐 아니라 이듬해에는 ‘설교’를 담당할 정도의 위치까지 올라 있었습니다.
그리고 통일교 <사보> 109호(1990,12월) 내용은 “유서 깊은 옛 모습 79”라는 제목으로 ‘목포교회’를 다루고 있는데, ‘두 명의 박윤식’이 동명이인임을 입증하는데 결정적인 근거가 됩니다. 가장 명백한 것은 사진상의 얼굴이 다르기 때문이고, 다른 또 하나의 이유는 ‘전도관 출신 박윤식 전도사’가 1957년 목포 전도관을 이탈하여 통일교에 입교한 이후 <사보> 109호를 발간한 1990년 12월까지 통일교에서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보> 109호는 ‘전도관 출신의 박윤식 전도사’를 중심으로 목포교회의 생성과정과 30여 년의 역사를 정리하면서, 사진 상의 인물들과 기타 주요 사람들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만약 여기에 등장하는 ‘박윤식 전도사’가 평강제일교회 박윤식 목사라면 이듬해에 다시 통일교를 이탈하여 감리교로 옮긴 후 전도사가 되고, 동마산 감리교회를 담임했다는 말이 됩니다. 그런 일이 있었다면 목포교회의 핵심인물인 ‘박윤식 전도사’의 행적을 빠트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보> 109호의 내용을 볼 때, ‘전도관 출신의 박윤식 전도사’는 감리교로 다시 이탈하여 나갔다는 기록도 없고, 적어도 사진을 촬영한 1962년 당시까지는 통일교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이 확실합니다. 따라서 이미 1959년 12월(감리교 공식 기록)에 감리교단 소속 전도사로서 동마산 감리교회를 담임하였던 평강제일교회의 박윤식 목사와는 명백하게 전혀 다른 동명이인임을 알 수 있습니다.
둘째, 감리교의 교역자 임명과 파송의 과정을 볼 때, ‘통일교 출신’의 전도사를 갑작스럽게 임명한다는 것 또한 불가능합니다.
교단에서 교역자로 임명을 하고, 그에게 교회를 담임시키려면 적어도 그 교단에 소속되어 신학을 하고 교회를 섬기며 봉사하는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에게 신앙과 목회적 능력이 인정될 때 교회를 담임케 하는 것이 정상적인 교단의 모습이고 목회자 양성 절차입니다. 박윤식 목사는 감리교의 공식 기록에 의하면 1959년 12월부터 61년 7월까지 ‘동마산교회’를 전도사 신분으로 담임하였습니다. 김관도 목사는 당시 ‘박윤식 전도사’가 1958년 4월부터 동마산 교회에서 봉사한 것으로 진술하고 있습니다. 이는 감리교 공식기록과는 차이가 나지만, 적어도 당시 ‘박윤식 전도사’(평강제일 교회 원로목사)가 마산 지역에서 감리교단 소속 교역자로서 봉사했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는 중요한 자료가 됩니다. 이러한 사실은 탁명환 씨나 정정조 목사의 기록에서도 박윤식 목사가 1957년부터 동마산 감리교회를 담임했다고 기록한 데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만약 세이연의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감리교단은 통일교에 심취하고, 설교까지 하던 사람을 소속 교단의 전도사로 임명하고, 교회를 담임시키기까지 했다는 말인데, 이는 교단의 생리와 목회자가 되는 과정을 살펴볼 때 절대 불가능합니다. <사보> 166호의 유효원의 기록에서 ‘전도관 박윤식 전도사’가 통일교 원리공부에 심취해 있을 그 때에 ‘박윤식 목사’는 마산 지역에서 감리교단 소속으로 신앙생활을 하며 전도사가 되고, 동마산 감리교회를 담임하여 목회를 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몇 가지 자료만 검토해 봐도 당시 ‘두 명의 박윤식’이 존재했고, 이 둘은 전혀 다른 길을 걸었던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2) 두 사람은 부인이 다른 동명이인입니다.
통일교의 <사보> 166호에 의하면 당시 ‘박윤식 전도사’는 12월 11일(수)에 정정애 양과 결혼식을 하였다고 나옵니다. “그들은 오늘이 결혼식 날이다. 뜻을 위해 연장시킨 일”이라는 내용을 볼 때, 원래 결혼식은 그 이전이었는데 뜻을 위해 연장시켜서 이 날(12월 11일) 결혼을 했다는 것입니다. 12월 12일(수)과 13일(금)에도 “박 전도사와 그의 신부였던 정정애양을 상대로 말씀하다”라는 기록이 나옵니다.
이 기록은 당시 두 명의 ‘박윤식’이라는 사람이 존재했다는 명백한 증거가 됩니다. 만약 세이연의 주장대로 통일교 ‘사보’에 나오는 ‘박윤식 전도사’가 평강제일교회 박윤식 원로목사라면 그의 부인인 ‘정정애’가 현재 박윤식 목사님의 사모님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박윤식 원로목사의 부인은 정정애가 아니라 민00 이기 때문에, 이 둘은 결코 동일인일 수가 없습니다.
(3) 전도관 출신 박윤식 전도사의 사진은 박윤식 원로목사와 전혀 다른 인물입니다.
‘교회와 신앙’ 2013년 8월 9일자 ‘이영호 목사’의 글을 보면 통일교의 <사보>를 인용하여 “① 1957년 목포 전도관 분열파동으로 1958년에는 박윤식 전도사가 책임 인도하며, 이승규 전창배가 목포 통일교회에 입교”라고 기술하였습니다. 통일교 <사보> 166호의 유효원의 일기에 나오는 ‘전도관 출신 박윤식 전도사’의 존재와 행적, 그리고 109호에 나오는 ‘박윤식 전도사’의 목포 전도관 이탈과 당시의 사진은 그동안 박윤식 원로목사의 통일교 전력을 주장하는 핵심적인 근거자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자료는 모두 ‘전도관 출신 박윤식 전도사’에 관한 내용들로서, 박윤식 목사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것들입니다.
특히 <사보> 109호(1990년 12월)는 ‘전도관 출신의 박윤식 전도사’의 사진까지 선명하게 게재되어 있고, 설명 내용에도 “사진엔 박 전도사가 검은 복장을 하고 중앙에 앉아있고”라고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얼굴비교를 통해 명백하게 다른 인물임이 밝혀졌던 것입니다.
그런데 ‘세이연’은 지난 11월 20일자로 발표한 기자회견문에서 사진상의 인물을 ‘전도관 출신의 박윤식 전도사’가 아니라 ‘박종우’씨의 것이라 주장하고 있으나 이는 전혀 사실과 다릅니다. 그 이유는 사진상의 인물에 대해 분명히 ‘박 전도사’라고 지칭하고 있고, 위 기사에서 ‘박 전도사’에 해당하는 인물은 바로 앞에 언급된 “1958년 목포의 전도관 분열파동으로 박윤식 전도사가 갈라져 나와서 목포교회를 책임인도 하였으며...”라는 문장의 ‘박윤식 전도사’이기 때문입니다. 세이연에서 주장하는 ‘박종우 전도사’는 기사에서 ‘박종우 씨’로 한번 언급된 인물이며, 그는 ‘전도사’가 아니기 때문에 사진상의 ‘박 전도사’가 될 수 없습니다.
또한 <사보> 109호의 내용 전체를 읽어보면 저자는 모든 사람들의 이름에 ‘직함’을 붙여쓰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목사’, ‘전도사’, ‘씨’, ‘양’, ‘할머니’, ‘선생’ 등을 반드시 이름 뒤에 붙여 씀으로써 혼동을 피할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역할과 직책을 확실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따라서 ‘박종우 씨’를 임의로 ‘박종우 전도사’로 만들 수 없습니다. <사보> 166호의 유효원의 일기에서도 ‘박윤식 전도사’를 ‘박 전도사’로 바꿔가며 기록하고 있음을 볼 때, 어떤 경우에도 ‘박종우 씨’가 ‘박 전도사’로 바뀔 수 없습니다. <사보> 109호에 나오는 ‘박 전도사’를 ‘박종우 씨’로 해석하는 것은 전도관 출신의 박윤식 전도사와 평강제일교회 박윤식 목사가 전혀 다른 동명이인으로 밝혀진 것을 인정하지 않고 책임을 모면하기 위한 술책에 불과한 것입니다.
(4) 두 명의 ‘박윤식’은 서로 한자 이름이 다릅니다.
월간 통일세계(1981.11월호)의 기록(‘오래된 교회를 찾아본다’)을 살펴보면 2002년에 발행된 통일교의 <사보> 166호의 내용과 일맥상통합니다. 즉, 1957년 11월부터 전도관 교인들이 집단으로 통일교회로 개종하고 이적해 왔고, 그 개종한 사람들이 전도관 박윤식이라고 기재되어 있으나, 그 한자 이름이 박윤식 목사의 한자 이름인 ‘朴潤植’이 아니라 ‘朴允植’이라고 다르게 표기되어 있습니다. 이 두 기사를 연결시켜보면, 적어도 ‘목포 전도관에서 이탈하여 통일교로 넘어온 박윤식 전도사’는 ‘朴允植’이라는 한자 이름을 사용한 자로, 평강제일교회 박윤식 목사와는 전혀 다른 동명이인이었던 것입니다.
이상, 네 가지 근거에 의해 1950년대 후반 ‘박윤식’이라는 이름을 가진 두 명의 동명이인이 존재했다는 사실과, 그동안 세이연측에서 ‘박윤식 목사의 전도관, 통일교 전력’의 근거로 제시한 ‘전도관 출신의 박윤식 전도사’는 박윤식 원로목사와는 전혀 다른 사람임이 명백하게 밝혀졌습니다.
<주류> 잡지의 설교문 게재에 관하여
세이연은 금번 기자회견문(11월 20일자)에서뿐 아니라, 지난 2012년 5월 29일에도 “통일교 잡지에 글을 쓴 박윤식씨”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서, 그리고 2013년 8월 9일자 교회와 신앙에서 이영호 목사에 의해 지속적으로 통일교 <주류(主流)>에 설교문을 게재한 것을 박윤식 목사가 통일교와 교류한 증거로 주장하여 왔습니다.
그러나 이는 엄연히 사실과 다른 허위 주장일 뿐입니다.
1) 통일교의 <주류(主流)>에는 곽선희, 김선도, 강원용 목사 등 당시 한국 교계를 대표하는 목사들의 설교가 매월 ‘이달의 말씀’이라는 제목으로 게재되었습니다.
①1984년 12월 호에는 소망교회 곽선희 목사의 ‘감사 찬송의 주제’라는 제목의 설교문을 ‘이달의 말씀’란에 게재하였다(6-8쪽). 같은 책 56쪽에는 감신대 학장 변선환 목사의 ‘한국 기독교의 근대화 방향’이라는 기고문도 게재되어 있습니다.
②1985년 1-2월호(제10호)에는 광림교회 김선도 목사의 ‘사랑의 날개를 타고’라는 제목의 설교문이 역시 ‘이달의 말씀’란에 게재되었습니다.
③1985년 4월호(제12호)에는 경동교회 강원용 목사의 ‘고난의 현장으로’라는 제목의 설교문이 게재되었습니다.
세이연의 주장대로라면 곽선희 목사나 김선도 목사도 통일교와 교류를 하였으며, 이들도 통일교 출신이란 말이 됩니다. 당시 <주류>는 ‘기독학생연합회’(ICSA)라는 이름으로 발간된 기독교 계통의 월간지를 표방하였습니다. 이는 3월호 목차를 볼 때 ‘교회탐방’, ‘산상수훈’, ‘공동체로서의 한국교회’, ‘예수가 만난 사람들’, ‘주 예수보다 귀한 분은 없네’ 등 기독교적인 내용들로 구성된 것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한 1985년 3월호는 제 11호로서, 발간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통일교 계통의 잡지라는 것이 알려지지 않았던 때입니다. 때문에 박윤식 목사가 <주류>에 설교문을 게재한 것은 그것이 통일교 계통의 잡지인줄 몰랐기 때문이고, 그 전 호에 곽선희 목사나 김선도 목사의 설교가 게재된 것을 보고 선교차원에서 청탁에 응한 것 뿐입니다.
2) 박윤식 목사가 <주류>에 게재한 설교문은 <1983년 2월 10일 주일 낮 설교>를 요약한 것입니다. 그 내용을 보면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의 조건을 여섯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①부르심에 아멘하는 사람 ②열심히 일하는 사람 ③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④주님을 사랑하는 사람 ⑤충성하는 사람 ⑥복음을 위해서 일생을 바친 사람. 이상의 설교문을 보면 지극히 정통적이고 성경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설교의 전체적인 내용이나, 전후 맥락을 살펴보지 않고 단지 통일교에서 발간하는 잡지에 설교를 게재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통일교 출신이니, 통일교와 교류하고 있다는 증거라는 등의 비판은 전혀 사실과 다른 주장입니다.
기독교의 본분은 복음전파다.
복음은 죽은 사람은 살리고, 죄인은 죄에서 돌아서게 하여 의인이 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신흥 이단감별사들에게는 복음이 없고 절간 입구에 내리치려고 큰 칼을 차고 있는 괴물처럼 ①이단이면서 이단감별을 하고 ②자신의 과거는 보지 않고 다른 이의 약점만 보려고 한다.
우리는 하늘에 소망을 둔 성도이다. 그러므로 성도로서 성속(聖俗)을 가려 거룩하게 살기를 바라야 한다.
박윤식 원로목사는 2013년 8월 25일 현재도 이단이 아니다.
거짓의 아비는 마귀다. 마귀의 아들들은 오늘도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도전한다. 곧 거룩한 하나님의 교회,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파괴하려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