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강의 참모습

왜곡 보도 반박

사진 조작, 동명이인 4가지 근거, <주류> 잡지 설교 게재 의혹 —
이단감별사들의 주장이 사실과 어떻게 다른지 원문 자료로 반박합니다.

① 이단 규정 논란 ② 법원 판결 자료 ③ 왜곡 보도 반박 ④ 구속사 신학

사진 조작과 허위사실 유포

신흥 이단감별사들은 50년 전 사진이라고 하면서 그 사진에 박윤식 원로목사가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사진 세탁 — 악의적 조작

여성도 4인과의 기념사진을 "다정한 한때"로 조작

이단감별사의 특기 중 하나인 사진 세탁은 역사적 전례가 있는 행위입니다. 고 탁명환 씨는 50년 전 박윤식 목사와 여성도 4인이 기념촬영한 사진에서 옆에 있는 여성도들을 잘라내고 한 사람의 여성도만 남겨 "다정한 한때"로 표기하였습니다. 이런 사진에 의한 세탁은 전 인격, 신분에 대한 악의적인 세탁입니다.

전도관 출신 박윤식 전도사가 '동명이인'인 분명한 근거 4가지

그동안 박윤식 원로목사를 '전도관·통일교 출신'으로 비판했던 주장과 근거들이 사실은 동명이인인 전도관 출신의 박윤식 전도사(朴允植)에 관한 이력이었음이 밝혀졌습니다.

사진 감정 결과 — 명지대학교 최창석 교수

2013. 7. 16
최창석 교수 (명지대학교 정보통신학과)
  • 우리나라 검찰에서 사용 중인 몽타주 시스템 개발자
  •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자문위원
  • 『얼굴은 답을 알고 있다』 저자
  • 25년간 얼굴 연구 — 얼굴 정보처리 전문가
🔬 감정 최종 결론
"얼굴 전체적으로 닮은 곳이라고는 하나도 없어 동일인물로 의심할 수가 없다. 설령 동일인물이 성형을 했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다르게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12개 부위 세부 감정 결과 — 전도관 박윤식(允植) vs 박윤식 원로목사(潤植)

① 얼굴형
允 역오각형
潤 타원형
② 얼굴 길이
允 짧다
潤 길다
③ 두상
允 납작한 형
潤 둥근 형
④ 두발
允 약간 곱슬
潤 직모
⑤ 이마
允 좁다
潤 넓다
⑥ 눈썹
允 일자 수평
潤 아래로 처진 형
⑦ 눈
允 가로로 좁고 둥글다
潤 가늘고 길다
⑧ 코
允 짧고 끝이 뭉퉁하다
潤 끝이 길고 날씬하다
⑨ 입술
允 오른쪽이 처진 형
潤 거의 수평형
⑩ 턱
允 짧고 각지다
潤 길고 V라인
⑪ 턱 끝
允 짧고 좁다
潤 길고 넓다
⑫ 귀
允 뒤로 누워 있다
潤 앞을 향해 있다
1

'두 명의 박윤식'은 전혀 다른 길을 걸어온 동명이인입니다

박윤식 목사의 동마산 감리교회 서리 담임자 시절, '전도관 출신 박윤식 전도사'는 이미 목포 전도관에서 통일교로 입교하여 원리공부를 하고 통일교의 '목포교회'를 1962년 정도까지 담당하고 있었습니다(<사보> 109호, 166호).

만약 동일인이라면 행적은 [목포 전도관 → 서울 통일교 → 마산 감리교]가 됩니다. 이는 두 가지 이유에서 불가능합니다.

첫째, 통일교 <사보> 166호 유효원의 기록에서 '전도관 출신 박윤식 전도사'는 통일교 원리공부에 크게 은혜를 받고 심취하여 전도관의 전도사들을 통일교로 이끄는 등 열성적으로 활동하였고, 이듬해에는 '설교'를 담당할 정도의 위치까지 올라 있었습니다.

  • 1957.11.8(금)"강의의 상대는 박윤식씨다. 매우 기뻐하다."
  • 1957.11.24(일)"정대생(政大生) 10여 명을 상대로 박윤식 전도사가 입교 간증담을 하다."
  • 1957.11.25(월)"박윤식 전도사는 수원 전도관 전도사를 데리고 온다고 수원으로 갔다."
  • 1957.11.26(화)"전도사 박윤식씨를 상대로 말씀하다. 좋아서 어쩔 줄 몰랐다."
  • 1958.1.6(월)"박윤식씨가 전도관 총무를 데려온다 하여 기다리다가 11시에 강의를 시작하다."
  • 1958.1.7(화)"박윤식씨가 전도관 전도사 한 분을 데려왔다. 그는 3시간의 강의에 감명되고 말았다."
  • 1958.1.30(목)"오늘은 전도관에서 박전도사를 찾아온 분을 상대로 원리 말씀하다."
  • 1958.2.2(일)"전도관에서 온 유원배씨도 다른 전도사를 데리고 와서 설교를 듣고 울고 갔다. 이제는 전도관도 움직이기 시작한다."
  • 1958.2.16(일)"저녁 설교는 박윤식씨가 하다."

둘째, 감리교의 교역자 임명과 파송 과정을 볼 때, 통일교에 심취하고 설교까지 하던 사람을 감리교단의 전도사로 임명하고 교회를 담임시킨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합니다. <사보> 166호에서 '전도관 박윤식 전도사'가 통일교 원리공부에 심취해 있을 그때에, 박윤식 목사는 마산 지역에서 감리교단 소속으로 신앙생활을 하며 전도사가 되고 동마산 감리교회를 담임하여 목회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2

두 사람은 부인이 다른 동명이인입니다

통일교 <사보> 166호에 의하면 당시 '박윤식 전도사'는 12월 11일(수)에 정정애 양과 결혼식을 하였다고 나옵니다.

"그들은 오늘이 결혼식 날이다. 뜻을 위해 연장시킨 일"(12월 11일), "박 전도사와 그의 신부였던 정정애양을 상대로 말씀하다"(12월 12일·13일)

만약 통일교 <사보>의 '박윤식 전도사'가 박윤식 원로목사라면 그의 부인이 '정정애'여야 합니다. 그러나 박윤식 원로목사의 부인은 정정애가 아닙니다. 이 둘은 결코 동일인일 수 없습니다.

박윤식 전도사와 부인 정정애 관련 기록

3

전도관 출신 박윤식 전도사의 사진은 박윤식 원로목사와 전혀 다른 인물입니다

통일교 <사보> 109호(1990년 12월)에는 '전도관 출신의 박윤식 전도사'의 사진이 선명하게 게재되어 있고, "사진엔 박 전도사가 검은 복장을 하고 중앙에 앉아있고"라는 설명이 있습니다. 이 사진에 대한 최창석 교수의 감정 결과, 12개 부위 모두 다른 인물임이 확인되었습니다. (위 쟁점 ① 감정 결과 참조)

한편 '세이연'은 사진상의 인물을 '박윤식 전도사'가 아니라 '박종우 씨'의 것이라 재주장하였으나,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사보> 109호에서 사진상의 인물은 분명히 '박 전도사'로 지칭하고 있고, '박종우'는 기사에서 '씨'로만 언급된 인물로 전도사가 아닙니다. <사보> 109호 전체에서 저자는 '목사', '전도사', '씨', '양' 등 직함을 반드시 이름 뒤에 붙여 쓰고 있으므로, '박종우 씨'를 임의로 '박 전도사'로 바꾸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통일교 유효원의 일기가 실린 ‘사보(史報)'와 해당 내용

4

두 명의 '박윤식'은 서로 한자 이름이 다릅니다

월간 통일세계(1981년 11월호) '오래된 교회를 찾아본다'에는 1957년 11월부터 전도관 교인들이 집단으로 통일교로 개종했다고 기재되어 있으며, 그 한자 이름이 박윤식 목사의 한자인 朴潤植이 아닌 朴允植으로 다르게 표기되어 있습니다.

전도관에 있다가 통일교로 옮긴 박윤식씨는 전도관에 있을 때는 윤택할 '潤'을 사용하다가 통일교로 옮길 때는 허락할 '允'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반면 평강제일교회 박윤식 원로목사는 1928년 출생 시부터 지금까지 호적에 등재된 윤택할 '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 전도관 출신 박윤식 전도사
朴允植
허락할 '윤(允)'
통일교로 옮길 때 사용한 한자
✅ 평강제일교회 박윤식 원로목사
朴潤植
윤택할 '윤(潤)'
1928년 출생 시부터 호적에 등재된 이름
이상 4가지 근거 — ① 전혀 다른 행적, ② 서로 다른 배우자, ③ 전문 감정으로 확인된 다른 얼굴, ④ 다른 한자 이름 — 에 의해 두 명의 동명이인이 존재했음이 명백하게 밝혀졌습니다. 대법원 또한 이를 확정하였습니다.

전 감리교 마산지역 담임 김관도 목사 증언

2008년 5월 14일 대한기독교감리회 중앙연회 김관도 목사의 '사실확인서'에는 박윤식 목사가 1958년 4월부터 1962년 3월까지 동마산감리교회에서 서리담임자(전도사)로 시무하였다고 확인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대한감리회 연회록에도 1960년 연회, 1961년 연회에 박윤식 목사가 동마산감리교회 서리담임직에 있다가 1961년 11월경 김관도 목사와 함께 마산을 떠났으므로 통일교나 전도관에 있은 적이 없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김관도 목사 직접 인터뷰

2013. 8. 20 오전 11:30 — 감리교원로원 205호 거실
질문

"목사님은 박윤식 목사가 1958년 4월부터 1962년 3월까지 동마산 감리교회에서 서리 담임자(전도사)로 시무하였음을 확인하였는데 맞습니까?"

답변

"네, 맞습니다."

질문

"김관도 목사님은 1956년부터 진해에서 목회를 하신 것으로 연회록에 나오는데 맞습니까?"

답변

"네, 맞습니다."

질문

"그러면 박윤식 목사님을 처음 만난 것은 언제입니까?"

답변

"1957년 말로 기억됩니다."

질문

"연회록에는 박윤식 목사가 1960년부터 동마산 감리교회 담임자로 나와있는데, 그것은 정식으로 임명받기 전에 약 2년 동안 무임으로 일하는 것을 보고 임명하는 관례에 따른 것이지요?"

답변

"네, 맞습니다. 당시는 너무도 생활이 어려워 많은 교회들이 교역자 이름만 올라있고 실제는 없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질문

"더 하실 말씀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십시오."

답변

"박윤식 목사가 감리교 서리담임이 되기 전에 전도관 통일교에 있었다는 것은 거짓말이예요. 감리교는 전도사 시취에 합격하면 서리전도사라고 해요. 2년 후에 준목사고시를 보고 합격하면 준목사가 되고 그 후 2년 뒤에 목사고시를 보기 때문에 어디 곁눈질할 시간이 없었어요. 특히, 박윤식 목사는 그 어려운 생활 중에도 마산에 있는 동안 손수 벽돌로 동마산감리교회를 지었지요. 곁눈 팔 수 없었어요."

동마산교회 전도사 이후의 사역 — 통일교와 전혀 무관

1961년 이후 박윤식 목사의 사역은 통일교가 결코 아니었음을 밝혀주는 두 가지 중요한 증언이 있습니다.

국민일보 1990. 5. 23 — 명지대학교 총장 유상근 장로 신앙간증문
"행정학, 법학, 철학을 닥치는대로 공부하였으나 성경말씀이 없이는 총장직을 감당할 수 없어, 성경말씀을 1천독 하셨다는 유명한 박윤식 목사를 찾아갔다. 자초지종을 설명드리고 성경을 배우겠다고 말씀 드렸더니 박 목사님은 바쁜 시간을 쪼개어 하루에 2시간씩 지도해 주시기로 배려하여 2년 동안 꾸준히 성경말씀을 공부하였다."
— 1960년 내무부 통계국장 역임, 명지대학교 총장 유상근 장로 간증

또한 부산에 성창기업 창업주 정태성 장로도 박윤식 목사에게 성경공부를 하여, 박윤식 목사가 서울에서 교회를 개척 설립할 때 목재 등 많은 물자를 지원하였습니다.

그 후 새문안교회 강신명 목사와 신앙적으로 깊은 유대를 가지고 서로 교환하면서 부흥회를 인도한 적도 있었습니다. 이 모든 이력은 박윤식 목사의 사역이 처음부터 끝까지 정통 개신교의 흐름 안에 있었음을 명확하게 증명합니다.

통일교 <주류(主流)> 잡지 설교 게재 해명

세이연은 2012년 5월 29일 "통일교 잡지에 글을 쓴 박윤식씨"라는 제목의 글과 2013년 8월 9일 이영호 목사의 글을 통해 지속적으로 통일교 <주류(主流)>에 설교문을 게재한 것을 박윤식 목사가 통일교와 교류한 증거로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전혀 다릅니다.

① <주류>에는 당시 한국 교계를 대표하는 정통 목사들의 설교도 게재되었습니다

호수목사 / 교회설교 제목게재란
1984년 12월호곽선희 목사 (소망교회)'감사 찬송의 주제''이달의 말씀' 6–8쪽
같은 호 56쪽: 변선환 감신대 학장 기고
1985년 1–2월호 (제10호)김선도 목사 (광림교회)'사랑의 날개를 타고''이달의 말씀'
1985년 4월호 (제12호)강원용 목사 (경동교회)'고난의 현장으로'게재
세이연의 주장대로라면 곽선희 목사(소망교회), 김선도 목사(광림교회), 강원용 목사(경동교회)도 통일교와 교류한 것이 됩니다. 이는 주장 자체의 논리적 모순입니다.

② 당시 <주류>는 통일교 계통임이 알려지지 않은 잡지였습니다

<주류>는 '기독학생연합회(ICSA)'라는 이름으로 발간된 기독교 계통의 월간지를 표방하였습니다. 1985년 3월호는 제11호로서 발간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통일교 계통의 잡지라는 것이 알려지지 않았던 때입니다. 3월호 목차도 '교회탐방', '산상수훈', '공동체로서의 한국교회', '예수가 만난 사람들', '주 예수보다 귀한 분은 없네' 등 지극히 기독교적인 내용으로 구성되었습니다.

박윤식 목사가 <주류>에 설교문을 게재한 것은 통일교 계통의 잡지인 줄 몰랐기 때문이고, 그 전 호에 곽선희 목사·김선도 목사의 설교가 게재된 것을 보고 선교 차원에서 청탁에 응한 것뿐입니다.

③ 게재된 설교 내용은 지극히 정통적이고 성경적입니다

박윤식 목사가 <주류>에 게재한 설교문은 1983년 2월 10일 주일 낮 설교를 요약한 것으로,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의 조건을 여섯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르심에 아멘하는 사람
열심히 일하는 사람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
충성하는 사람
복음을 위해 일생을 바친 사람

설교의 전체적인 내용이나 전후 맥락을 살펴보지 않고, 단지 통일교에서 발간하는 잡지에 설교를 게재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통일교 출신', '통일교와 교류한 증거'라는 비판은 전혀 사실과 다른 주장입니다.

K 포털신문 J 기자 허위 기사 → 대법원 판결 → 정정보도

K 포털신문 J 기자는 2013년 6월 24일자로 "박윤식 씨는 전도관·통일교 출신자"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하였습니다. 그 근거로 전도관 측 <국제기독뉴스> 1957년 9월 9일자의 '화순 전도관 박윤식 전도사' 내용과 통일교 <사보> 109호를 제시하였습니다.

이에 박윤식 목사는 법원에 정정보도 소송을 제기하였고,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 판결을 받았습니다.

J 기자의 허위 기사 (2013. 6. 24)

기사에서 제시한 두 가지 근거 — <국제기독뉴스>의 '화순 전도관 박윤식 전도사'와 <사보> 109호 — 는 모두 동명이인(朴允植)에 관한 내용으로, 박윤식 원로목사(朴潤植)와는 전혀 무관합니다. 수십 년 동안 박윤식 목사를 접해왔기에 당연히 그 얼굴을 알고 있었을 텐데도, 다른 사람의 얼굴이 나온 사진으로 박윤식 목사를 공격하였습니다.

대법원 2014다76168 — 정정보도 최종 승소 (2015. 1. 23)

대법원은 박윤식 목사의 정정보도 청구를 받아들여 J 기자의 기사 내용이 허위임을 확정하였습니다. 이 판결은 이전 대법원 2009다86741 판결(2010년)에 이어 동일한 이단 주장에 대한 두 번째 대법원 확정 판결입니다.

J 기자 정정보도문 게재 (2015. 1. 26)

J 기자는 2015년 1월 26일자로 다음과 같은 정정보도문을 게재하였습니다.

"확인한 결과, 박윤식은 전도관의 화순 전도사로 활동하거나, 전도관이 운영하는 신문사를 방문한 사실이 없고, 통일교에 입교하여 원리강론을 배운 적이 없음이 밝혀져 이를 바로 잡습니다."

K 포털신문 정정보도문 스캔 (2015. 1. 26)

1983년 탁명환 씨의 허위 기사로 시작된 이단 조작이 두 차례의 대법원 판결과 정정보도로 바로잡히기까지 무려 42년이 걸렸습니다. (1983 → 2010 → 2015)